Entre Suerte - 지구별 여행기
해외에서도 이어지는 독서모임, 느슨하지만 단단한 연결 본문

책이라는 매개로 만난 우리.
책을 읽으면 작가와 내가 연결되고, 함께 읽으면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처음에는 이 공통점 하나가 재밌어서 시작했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는 조금씩 깊어졌다.
각자의 삶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누군가는 귀 기울여 들어주고, 또 누군가는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준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다 보면 특별한 해결책이 없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독서모임은 단순히 책을 읽는 자리를 넘어, 잠시 기대어도 괜찮은 작은 심리상담처럼 느껴진다.

노트북으로 마주하는 온라인 모임이지만, 누군가의 일에 함께 마음을 쓰고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모임을 꾸준히 이어가게 한다.
그 연결이 삶을 크게 바꾸지는 않더라도, 흔들릴 때마다 나를 다시 중심으로 데려다 놓는 조용한 지지대가 되어준다.
해외에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페루에 와서도 독서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전자책의 역할이 컸다.
요즘은 기능도 충분히 좋아져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저장하거나 이미지로 변환할 수 있고,
오디오북은 귀로 듣는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이제는 어디에 있든 책을 구하지 못해 읽지 못한다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가격 부담도 적어, 해외에 있는 동안은 자연스럽게 전자책을 찾게 된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신간을 바로 전자책으로 만나지 못할 때나, 좋아하는 작가의 출간 이벤트 소식을 접할 때면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거리가 실감나기도 한다.

2023년, 혼자 읽는 시간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져 시작한 독서모임이 이제 4년차에 접어들었다.
함께 읽은 책만 어림잡아도 70권.
물론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어떤 책들은 그때의 상황과 감정까지 함께 남아 있다.
특히 감상을 기록하거나 문장을 곱씹었던 책들은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떠오른다.
당장 삶의 해답을 주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마주할 여러 순간들 속에서 조금 더 단단하게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기준 같은 것들을 남겨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독서모임은 단순한 독서라는 행위를 넘어 나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붙잡아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한 발짝 떨어져 나를 바라보게 하고, 직접 겪지 않아도 될 여러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외국 생활에 적응하기도 벅찰텐데 굳이 페루까지 와서 책을 읽는게 의미가 있을지,
그만두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이 느슨하지만 분명한 연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이만큼 버텨낼 수 있었을까?
가끔은 그때 나를 붙잡아준 리더와, 책 안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 멤버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곤 충동적 감정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홀로 마음을 쓸어내리곤 한다.

혹시 누군가 나처럼 해외에서도 이어갈 수 있는 느슨한 연대가 있다면, 굳이 그것을 정리하고 내려놓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디에 있든 내 마음과 시선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배움은 늘 필요하니까.
앞으로도 독서모임을 통해 만난 좋은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천천히 정리해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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