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e Suerte - 지구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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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각들/찰나의 생각

마음을 가꾸는 한 다발의 꽃

Lacena 2026. 4. 2.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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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 지내면서 기분전환겸 샀던 생화가 어느샌가 주기적으로 챙기는 취미가 되었다.

그런다고 감각이 좋아 인테리어에 도움되는 건 아니지만,
페루의 따뜻한 기후로 꽃 공급이 꾸준하고 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부담이 없다.

게다가 2025년 말부터대통령 탄핵과 교체가 반복되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졌고,치안도 예전 같지 않다 보니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역마살 낀 내 성향상 꽃으로나마 기분 전환을 해보려던 시도에서 출발한 것 같다.

길거리의 꽃 상인들은 언제 봐도 반갑다.
꽃다발의 화려함만큼 내 마음에도 어여쁜 색깔이 칠해지는 순간.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 리마는 길거리에서도 꽃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꽃집이 아니어도 모퉁이마다, 신호등 앞에서도,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 손끝에서도 꽃은 늘 피어 있다.
그러다 문득 집에 오는 길에,

“오늘만큼은 꽃이 필요하다” 싶어 한 다발을 집어 들었다.

문제는 그 ‘한 다발’이 늘 내 예상보다 비싸게 끝난다는 거다.
처음엔 대략적인 시세도 모르고, 스페인어도 어버버 하다보니
꽃 한 번 샀다 하면 꼭 덤탱이가 따라붙었다.
(가격을 물어보면 대충 웃으면서 말하고,
내가 제대로 이해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면
가격에 비해 빈약한 꽃다발이 손에 쥐어진다…😂)

처음엔 억울했다.
‘외국인이 제일 만만한 호구인가’
‘담에는 그곳에서 절대 안사!’
속으로 100번 외치며 집까지 씩씩거리고 오다가도,
꽃을 꽃병에 꽂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풀린다.

값을 더 받았든, 내가 호구가 되었든(?)
꽃은 오늘도 아주 싱싱하게 피어 있고
그 생기 하나로 거실 공기가 바뀐다.

특히 리마의 햇살 아래서 꽃은 더 솔직해진다.
한 조각씩 거실에 생기가 들어오는 느낌.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음식 냄새,
그 사이에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만으로도
집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살아있는 곳’이 된다.
아마 내가 꽃을 사는 이유일지 싶다.

여기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디든 훌쩍 떠나는 자유’도 함부로 실행에 옮길 수 없으니,
대신 꽃으로 공간을 여행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내가 정말 버려야 할 것은 덤탱이 쓴 영수증이 아니라, 오래 시들어 악취가 나던 감정의 다발들이 아닐까 하고.


어느새 시들어 축 쳐진 꽃이 내 마음같다.
그래서 더 자주 새 꽃을 사게 된다.
시든 감정은 버리고, 다시 환한 꽃을 꽂듯 새로운 마음을 들여놓는 것.

오늘도 거실에는 꽃 한 다발이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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