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re Suerte - 지구별 여행기
리마의 회색 날씨 - 왜 리마는 비가 거의 오지 않을까? 본문
리마에서 지내다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늘의 색이다.
한국에서 보던 선명한 파란 하늘 대신, 이곳의 하늘은 대부분 회색이다.
흐린 날씨처럼 보여서 비가 올 것 같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다.
낮게 깔린 구름과 안개가 도시 위를 덮고 있을 뿐이다.
리마 하늘이 회색인 이유


리마의 이런 하늘에는 이유가 있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 때문이다.
이 차가운 해류가 태평양 위에 차가운 공기층을 만들고, 그 위로 얇은 구름이 계속 형성된다.
여기에 안데스 산맥이 공기의 흐름을 막아 구름이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리마에는 비 대신 ‘가루아(Garúa)’라고 불리는 안개 같은 구름층이 도시를 덮고 있는 날이 많다.
덕분에 리마는 세계에서도 특이한 기후를 가진 도시가 되었다.
비는 거의 오지 않지만, 하늘은 오랫동안 회색이다. 보통 일 년 중 절반 이상이 이런 하늘이라고 한다.
회색 하늘이 주는 감정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 회색 하늘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어쩐지 아무것도 못하게 내 의지도, 기운도 축 눌러버리는 느낌었다.
햇빛이 줄어들면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고 비타민 D도 부족해지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리마에 사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듣는 말이 있다. 리마의 회색 하늘이 기분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장면도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이 가득한 날에도 수평선 아래로 노란 빛이 번지는 순간이 있다.
바다 위에 낮게 깔린 빛이 잔잔하게 퍼지면서, 회색과 금빛이 섞인 묘한 풍경을 만든다.
절벽 위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흐린 날씨라고만 생각했던 풍경 속에도 나름의 색과 움직임이 있다.

한편, 리마의 여름은 또 완전히 다르다.
12월에서 4월 사이에는 하늘이 갑자기 파랗게 열리고 햇빛이 강하게 내려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창밖에 파란 하늘이 보일 때는 하던걸 멈추더라도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내가 느낀 리마의 하늘
해가 쨍한 여름에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여름을 보냈던 첫 해에는, 그 이후 이어질 회색의 계절이 그렇게 내 기분을 좌지우지할 줄은 몰랐다. 회색 바탕의 배경안에서 으슬으슬하게 스며드는 공기와 함께 마음까지 오그라들고,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어떨 때는 한국의 하늘이 떠오른다.
비가 쏟아질 듯 빠르게 이동하던 먹구름, 눈이 내리기 직전의 고요한 회색빛, 한겨울의 알싸하면서도 건조한 공기까지.
그렇게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던 하늘들이, 어쩌면 내가 어디에 있든 다시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시간들이었을까?
이제 두 번째 가을을 앞두고 있는 지금, 조금씩 잦아지는 회색 하늘도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우울하게만 느껴지던 색이, 어느 순간부터는 도시의 차분한 배경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회색이기에 어떤 빛깔이 더해져도 전체의 톤을 부드럽게 낮추면서
오히려 더 깊게 빛날 수 있다는걸 느끼게 된다.
리마의 하늘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조용하다.
그리고 그 조용한 색 안에서,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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